김홍열교수의 유아교육 이야기 "네 친구 생각말고 네 생각을 이야기 해줄래"

조아라 | saku0329@naver.com | 입력 2015-10-01 10: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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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박사의 유아 교육 이야기]

 

 

네 친구 생각말고 네 생각을 이야기 해줄래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 교수)​ 

 


 

 

 

다해야,

 

 

지난 번 편지에서는 경제사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독일의 유아 양식 방식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했지. 잘 이해했으리라고 믿는다. 지난 편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야.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가족문화가 서구 중심의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특수한 현상이라는 거야. 어느 문화가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야. 집단적 무의식이 야기할 수 있는 폭력적 상황에 대해 우리는 늘 준비해야 하고 깨워있어야 한다는 거야. 최근 일본 수상 아베의 광기어린 발악을 보면 동아시아의 미래가 불안해. 아베의 외조부 역시 제국주의자였지. 개인보다 집단을 우월시하는 인간들에 의해 문명은 파괴되고 역사는 후퇴하게 돼. 좀 과도한 비약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보면 집단주의적 사고 방식의 결과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래 여기까지 하고 이제 다른 측면에서 자립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벌써 네 번째 편지인데 계속 자립에 대하여 이야기하니까 좀 지겹겠지만 그만큼 중요해서 그래.

 

이번에는 신학적, 철학적 측면에서 자립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창세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 신이 인간을 창조한 다음 그 인간을 돕는 다른 인간을 만들어요. 창세기 2장 18절에 나와.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먼저 인간 Man 이 있고 그 인간으로부터 다른 인간 즉 여자 Woman (wo = from) 가 나오는 거야. 둘이 만나면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 이 되는 거야. 창세기의 주요 모티브들이 헤브라이즘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고 이 헤브라이즘이 헬레니즘과 만나 오늘날까지 이어져 기독교 문화의 요체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위 언급한 창세기의 한 구절은 매우 중요해. 헤브라이즘의 기원은 유목민족 유대인들의 집단적 기억에서 출발해. 유대인들은 태초부터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전제로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시작했어. 창조주 하나님도 복수형으로 표현했고 인간도 남녀가 한 쌍을 이루어 사는 것으로 처음부터 전제한 거야. 나중 이런 개념은 삼위일체로 연결되기도 하고 성모 마리아까지 내려오게 돼. 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인간의 군집생활에서 시작된 개념이야. 당연히 원초적 개념이지.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살면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해 왔고 문명을 만들어 냈어. 이런 DNA 는 인간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야. 여기까지는 이해되겠지.

 

근데 이런 집단적 자의식은 어느 시기가 되면 제한적 역할뿐이 못하게 되요. 인간의 이성이 고도화되면서 집단적 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강하게 분출되는 거야. 철학이 시작되는 거지. 철학의 가장 근원적 본질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야. 내가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해석이 철학의 알파와 오메가야. 철학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대신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등장한 거지. 창세기와 헤브라이즘이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신학적 대답이라면 탈레스의 유물론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 응답이야. 신학과 종교의 시대에서 이제 철학과 인간의 시대로 넘어오게 되는 거지. 탈레스 이후 사람들은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마을로 옮겨올 수 있었어. 우리가 아닌, 가족이나 집단이 아닌 한 인간이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거야. 그리스 로마 이후 인간은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적 사유를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거야.

 

신을 믿으면 여러가지 좋은 점이 많아. 그 중 하나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야. 나를 만든 창조주가 있고 그 창조주가 만든 나와 같은 피조물들이 있어서 힘들 때마다 늘 위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어. 그러나 신앙은 기본적으로 믿음의 세계고,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관념의 세계야.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세계가 아니야. 신앙, 믿음, 집단,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집단학살과 전쟁, 폭력이 이루어졌는지 세계사 서너 페이지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어. 사회가 고도화되면 중요한 것은 집단적 관념이 아니라 합리적 의사 소통 방식이지. 상대방이 동의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해. 방언을 하면 안돼. 역할이 달라. 분명히 구분해야 돼요. 사회생활에서는 철학이 필요하고 종교는 개인에 따라 선택가능한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해해야 돼. 좀 더 체계적으로 표현하자면 우선 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종교적 심성이 발휘되면 좋아요.

 

요약적으로 설명해서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결론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대신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반추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간이 자립하는 과정이라는 거지. 우선 너부터 네게 스스로 질문하고 슬아에게도 조금씩 같은 질문을 해. “ 슬아야, 네 친구 생각말고 네 생각을 이야기 해줄래 ? “

 

한 주일 잘 지내고 내 주에 보자.

 

 

 

 

 

[한국유아신문 조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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