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홍열 박사의 유아 이야기

“NO KIDS”,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의미

조아라 | saku0329@naver.com | 입력 2015-09-02 09: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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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열 교수.

 

 

 

[한국유아신문 기획 오피니언]

 

 

 

 

다해야,  

 

 

네 아이 슬아가 벌써 네 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잔치 갔다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 새 시간이 꽤 흘렸구나. 네가 카톡으로 가끔 보내주는 아이 사진을 보면 어릴 적 네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실제 닮았는지 또는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보면 볼수록 참 예쁘고 신기하단다. 그 모습이 오래갔으면 하는 바램이 당연히 있지만 늘 어리게 보이던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아도 금새 커 버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아쉽겠지만 할 수 없지. 그 아쉬움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어 슬아와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기로 했다. 물리적으로 시간 내기는 어려워서 술아를 생각하면서 네게 편지를 써볼까 한다. 슬아가 예쁘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미 아이들을 키워본 경험자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네게 들려주고 싶어. 내 이야기 중 대부분은 그저 평범한 중년의 넋두리일 가능성이 많지만 그 중 가끔은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도 있을 거야. 없어도 할 수 없고. 적어도 슬아에 대한 나의 사랑만큼은 전달되겠지….

 

 

△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며칠 전 아무 생각없이 TV 를 보다가 번쩍 눈에 띠는 장면을 하나 봤다. “ NO KIDS” 라는 푯말이야. 요즘 그 푯말이 붙은 식당이 늘고 있다는 내용의 뉴스 속에서 그 장면이 나오더라고. 식당 안에서 아이들이 “무례하게” 뛰놀고 떠드는 일이 많아 주인들이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출입을 금지시켰다는 내용이야.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아이들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손님들의 반응을 찍었는데 대부분 불쾌하다는 표정들이었어. 이 내용,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서너 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다 겪어봤을 거야. 아이들 ‘통제’하기가 힘들고 너무 ‘통제’하다 보면 자칫 의기 소침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말이야. 이런저런 우려를 하다 보면 외식 한 번 하기도 힘들게 되지. 부모들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돼.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동일하니까. 그래,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때로는 그럴 수 있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학자마다 전문가보다 또는 성직자마다 각기 다른 좋은 의견들을 내놓겠지만 가장 중심적인 것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거야. 예를 들어 사자를 보자. 태어나서 어느 시기까지는 젖을 먹이다가 조금 더 자라면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면 ‘냉철하게’ 떠나 보내. 기본적으로 사람도 마찬가지야. 떠나서 혼자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고 부모는 그 능력이 발휘되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 돼. 이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예를 들어 사자의 경우에는 사냥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거든. 사람의 경우에는 사회와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어.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되지.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면 제대로 성장하기가 힘들어. 부모의 역할은 이 사회적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환기에 있다고 볼 수 있어.

 

교육은 그런 환기에 대한 제도적인 표현이야.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소통을 위해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툴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 가정과 학교가 역할을 나누어서 아이들의 사회성을 확장시켜 주는 거야. 그래서 자기 언어로 사회를 이해하게 될 때 자립할 능력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 거지. 물론 이런 능력이 생기는 시기는 시대마다 장소마다 달리 나타날 수 밖에 없어. 조선시대에는 열다섯 살 이상 되면 성인의 자격이 있다고 봤어. 농경 시대의 중요한 것은 육체적 근력이었기 때문에 성인과 같은 노동력이 가능하면 성인으로 인정하는 거야. 근대에 들어 와 교육제도가 체계화되면서 육체적 근력보다는 교육수준 정도가 중시되면서 점차 늦어지게 된 거지.

 

 

 

자, 다시 “NO KIDS” 로 돌아가 보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에게 사회적 관계에 대해 사회적 언어로 계속해서 알려주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 가능한 한 네 언어로 하지 말고 사회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좋아. 필요하면 너 역시 계속 생각하고 공부해야 되고. 네 살이면 이미 사회적 인지 능력이 발달되기 시작 했어. 문제는 아이한테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자신일 수 있어. 의기소침해 질까 봐 아이를 방치한다는 것은 결국 부모의 무식을 드러내는 행위 밖에 안돼. 너는 똑똑하니까 그렇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네가 “무식한 여편네’ 가 되면 내가 얼마나 슬프겠니. 아이들에게 시기에 맞게 알려 줘야 되는 것들이 있어. 그 시기를 놓치면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해지고 결국 부모들 자신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도 있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가능한 매주 보내도록 하마.

 

 

 

 

 

 

[한국유아신문 조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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